[기고]3.1절 10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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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3.1절 10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 동두천연천신문
  • 승인 201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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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주 경기북부보훈지청 보훈팀장
▲ 강현주 보훈팀장

[기고]올해는 3․1 만세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인지 예년에 비해 언론 매체와 SNS 등 각종 미디어를 통해 3․1절에 대한 많은 기획기사와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참 다행한 일이다 싶으면서도 100주년의 특별한 의미를 생각하면 보다 더 많은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지 않나 싶은 아쉬움도 남는다.

암흑과도 같았던 일제 강점기, 1919년 3월 1일에 민족지도자들은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천명하였고, 우리 국민들은 방방곡곡에서 목이 터져라 독립만세를 불렀다. 국민들의 독립에 대한 염원을 확인한 독립 운동가들은 독립국으로서의 우리 정부를 세우기 위해 국내외에 흩어져 있던 여러 임시정부들을 통합하고, 대동단결의 정신으로 결집하여 4월 11일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국호와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내각을 구성하였다.

이때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우리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조직으로서 미국, 중국 등 외국과 활발한 외교활동을 전개하는 한 편, 각종 교육, 문화 활동을 전개하여 독립의식을 고취시키고, 광복군 창설 등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우리 역사상 최초로 국민이 주인이 되고 의회가 중심이 되는 민주공화제 정부를 천명한 바, 오늘의 대한민국이라는 큰 나무의 씨앗이 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수립 이후 광복을 쟁취하기까지 27년간이나 정부조직을 유지한 채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는 식민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27년이라는 그 긴 시간동안 애국지사들에 대한 일본의 탄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고 임시정부도 독립 운동가들도 이곳저곳으로 피신하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했다.

수십 년의 세월동안 고향과 가족의 품으로 가지 못하고 타지를 떠돌면서도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염원은 오직 하나였을 것이다. 백범 김구선생님의 “나의 소원은 첫째도 독립이요, 둘째도 독립이요, 셋째도 우리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다”라는 말씀은 그 당시 모든 독립 운동가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국권을 빼앗긴 후 40년간의 항일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선열들이 목숨을 초개와 같이 조국의 제단에 바쳤는지, 지금도 만주나 연해주의 이름 모를 산야에 몇 분의 독립 운동가 분들이 묻혀 계신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때문에 우리들 중 그분들에게 진 마음의 빚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본받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나라를 사랑해야할 의무가 있다.

현재 전국에 계신 35분의 생존 애국지사님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갖고 정성을 다해 예우하는 것 또한 우리 국민의 의무이며, 3․1절 10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일 것이다.

국가보훈처에서는 독립유공자와 유족 분들의 자택에 “독립유공자의 집”이라는 명패를 달아드리고 있다. 살고 있는 지역에서 “독립유공자의 집” 명패가 있는 집을 보게 되면 그 곳에 사는 분께 반갑게 인사 한 마디 건네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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