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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컬럼] 유엔군 참전의 날이강준 경기북부보훈지청 보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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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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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준

[기고컬럼]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전쟁은 수많은 상처와 최악의 기록들을 남기고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정전협정이라는 말처럼 전쟁은 끝나지 않은 휴전이라는 애매한 상태로 남았고 그 후유증은 7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정확히 집계가 어려울 만큼 컸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그들 삶의 터전 역시 구석구석 잿더미가 되었다. 그 수많은 상처를 돌아볼 때 우리가 쉽게 놓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15만을 헤아리는 유엔군 사상자다.

전쟁이 일어나자 유엔은 유엔군을 창설하고 다음날인 1950년 7월 8일 미국의 맥아더 원수를 유엔군 사령관에 임명해 대한민국에 파병한다.

이후로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전투병과 의료지원 등 거의 200만에 이르는 유엔군이 대한민국을 도왔고 그중 3만 8천 여 명이 전사했다.

유엔군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3만 8천여 명의 고국에는 그보다 많은 숫자의 가족과 연인, 친구들이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10만이 넘는 부상병들은 전쟁이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가 그보다 많은 숫자의 혈육들과 고통의 무게를 함께 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실제 유엔군이 입은 피해의 범위는 우리가 생각하는 숫자보다 훨씬 광범위 하고 오랜 세월 그들의 가족과 공동체에 자리하게 된다. 우리가 6.25 전쟁 당시 유엔군 참전용사들에게 진 빚을 특정 세대에 한정 지을 수 없는 이유다.

6.25에 참전한 용사들은 그 국적에 관계없이 전우애로 이어져 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하나의 전장에서 하나의 목숨을 걸고 싸웠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후손들은 어떨까? 우리 후손들 역시 유엔군 참전용사의 후손들과 함께 연결되어 있다. 전장에 참전해 돌아오지 않은 이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 사지에서 살아 돌아온 가족을 마주하는 환희, 전쟁 후유증으로 아파하는 이를 바라봐야 하는 고통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고난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한 것이었다면 유엔군 참전유공자들의 가족과 후손들이 겪은 고난은 그들의 신념과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그 헌신이 우리에게 현재의 대한민국을 선물해 줬음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7월 27일은 유엔군 참전의 날이다. 국가보훈처 주도로 많은 행사가 열리고 자신들이 지킨 대한민국을 다시 찾는 유엔군 참전용사들도 많다.

그래도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 유엔군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 그리고 유엔참전국에 대한 부채의식은 우리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전해야 하는 유산이다. 특이하게도 그 부채의식에 대한 이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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